본문 바로가기
영화 & 드라마

[ 여중생 A ] 원작을 뛰어 넘을 수 있나?

by 하얀태양 2018. 6. 11.

영화 <여중생A>는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했으며,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한 여학생이 일상 생활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탄탄한 스토리와 꼭 안아주고 싶은 인물들, 가슴 깊은 곳까지 여운을 남기는 명대사들이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상과 어우러져 위로와 공감을 전할 감성 만점 영화로 탄생했다.

 

  스토리 라인 

 

미래는 폭력적인 가정환경에 노출된 가난한 집안의 여학생. 늘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자신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학교 친구들을 피해 게임 속 세상과 글쓰기에서 위안을 찾는다.

 

아이를 보듬을 사회안전망이나 책임있는 어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폭언과 폭력으로 대하고, 어머니 또한 미래의 괴로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단하고 무력할 뿐이다.

 

 


학교 선생님조차 애지중지 키우는 난초를 관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는 10대가 절망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훌쩍 세상을 떠나려 하는 모습은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나이보다 먼저 훌쩍 커버린 미래에겐 또래 친구들조차 버겁다. 입시에 시달리는 우등생,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알리 없는 소년은 뜻하지 않게 그녀를 상처입힌다.

 

 


짝사랑에 실패하고, 마음을 열었던 현실친구에게 상처를 입고, 현실을 도피하듯 들락거리던 게임마저 서비스를 중단하자 미래는 제 삶마저 중단해버릴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임 속 랜선친구 재희(김준면 분)를 찾아간다. 뜻밖의 힘이 되어주는 재희. 캐릭터란 가면을 쓰고 만났기에 도리어 나이와 처지에 상관없이 서로 속내를 털어놓게 된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는 절망과 우울로 가득한 영화에 빛줄기가 된다.

 

 

  원작 비교 

 

'여중생A'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웹툰으로 먼저 사랑받은 작품이며, 웹툰이 영화로 제작되는 첫 번째 사례이다. 웹툰 [여중생A]는 2016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 네티즌 평점 9.9점을 기록하며 연재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 “’자존감’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 ‘허5파6’의 말처럼, 평범한 여중생 ‘미래’의 느린 성장기를 통해 진한 감동과 여운을 전하며 “가장 간단한 그림으로 당대를 드러내고, 위로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영화는 원작의 주된 내용인 외로운 소녀의 성장담을 그대로 나타내었다. 흥분하는 법 없는 담담한 톤도 이어받아 아이의 성장담을 과장 없이 담아낸다. 미래와 재희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저마다의 개성과 사연을 지녔던 서브 캐릭터의 이야기를 과감히 쳐내고 미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큰 사건이 없음에도 2시간이 흥미롭게 흐른다. 하지만 그 결은 원작과 사뭇 다르다.

 

 

 

아웃사이더 소녀가 세상에 말하지 못한 속내를 귓속말하듯 들려주던 원작의 독백은 웹툰 '여중생A'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다. 담백한 그림체에 더해진 일기장 같은 심리 묘사는 비극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도 미래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했다. 대신 영화 '여중생A'는 친구들의 눈에 비쳤던, 말 없고 표정도 없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다.


세상이 자신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외면해버린 듯 굴던 미래의 자존감은 스크린에서 더 곤두박질친 듯 보인다. 시간이 지나서야 조심히 털어놓는 미래의 마음또한 멀리 돌아 관객에게 전해진다.

 

 

  떠오르는 하이틴 스타들 

 

 <곡성>에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소녀 배우 김환희가 <여중생A>에서 여중생 ‘미래’역을 맡았다. 최근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다 이번 영화로 더 큰 사랑을 받을 것 같은 기대감이 크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울타리인 가족과 학교가 아닌 게임 속에서야 겨우 숨을 쉬고 외롭지 않은 아이, 그저 평범하고 싶은 열여섯 살의 복잡하고도 여린 내면을 김환희는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진심을 담아 완벽하게 그려냈다. “이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라며 수줍게 웃는 김환희야 말로 모두가 그리던 여중생A, ‘미래’ 그 자체일 것이다.

 


 
 엑소 멤버 수호는 잠시 잊어라. <글로리데이>로 시작해 배우로서의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는 김준면. 그가 맡은 역할 ‘재희’는 ‘미래’의 랜선친구이자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친구로, 웹툰 연재 당시 ‘미래’만큼 많은 팬들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았던 캐릭터다. “위안을 줄 수 있는 이미지였다”라는 감독의 말대로, 김준면은 엉뚱한 듯 보이지만  남모를 아픔을 지닌 ‘재희’라는 캐릭터를 자신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해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인물로 완성해냈다. 뿐만 아니라 ‘미래’ 역의 김환희와도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풋풋하고 따뜻한 우정을 담아내 관객들에게 흐뭇한 웃음을 선사한다.
 

 


 극중 '노란'역을 맡은 정다은. 데뷔 후 맡는 첫 장편 영화에 촬영 전부터 긴장을 해 걱정이 많았다던 정다은은 “첫 장편 영화 출연, 그리고 원작 팬이 많은 작품이라 잘 해낼 수 있을까 긴장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분들이 많은 만큼 원작과 싱크로율 100%라는 말이 듣고 싶어 긴장한 티 내지 않고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고 씩씩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사실 내 캐릭터(노란)는 현실에 있으면 안 된다. 좋아하는 친구에 대한 동경, 시기, 질투가 모아져 나쁜 행동으로 이어졌다”라며 “영화를 보며 노란이가 굉장히 얄미우면서도 아마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로 한층 성숙된 성장을 보인 정다빈, <4등>으로 평단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유재상, 귀여운 외모와 다부진 연기로 눈길을 끄는 정다은 등으로 이루어진  아역 배우들의 중심에서 대중에게 친숙한 베테랑 배우 이종혁이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며 연기력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탄탄한 조연 군단을 이룬 만큼, 이들이 선보일 연기 조합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감독 코멘트 

 

“120분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내에서 원작의 어떤 포인트를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전부 가져오진 못했지만, 원작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영화 ‘여중생A’에서 재희가 20대라고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은 맞지만, 나이는 불분명하게 처리됐다”고 말했지만, 굳이 20대 배우를 캐스팅해야 했나 하는 미련이 남는 건 사실.

 

“‘여중생A’에는 제대로 된 어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누구도 집중하지 않는 모습을 강조하려 담임 선생님의 캐릭터를 바꿨다”

 

  부정적인 평가... 

 

소재 기근에 허덕이는 극장가에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어느덧 하나의 보증수표가 됐다. '26년'(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내부자들'(2015), '강철비'(2017), '신과 함께'(2017)까지 프레임에 갇혀 있던 캐릭터들은 스크린을 통해 새롭게 부화했고, 서로 핏대를 세우고 눈물샘을 자극하며 대중의 마음에 깊숙히 스며들었다.


'여중생A'도 이러한 웹툰 원작 영화의 강세 속에 큰 날개를 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본 걸까. 포장지를 벗기고 나니 웹툰의 영화화가 꼭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중생A'는 기본적인 이야기의 틀과 캐릭터는 원작을 따르지만, 서사를 전개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방향을 확 틀었다. 미래의 심리 묘사는 완전히 배제됐고, 그 대신 게임을 좋아하는 미래의 특성에 기반한 판타지적 연출이 가미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어마어마한 오판이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미래의 유약한 시선과 예술적 감성은 원작의 가장 큰 무기였고, 미래의 내적 표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가정폭력·학교폭력 문제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저 원작 캐릭터의 외피를 흉내내는 데 머무르고, 늘 봐왔던 폭력의 초상을 재연하기에 급급하다. 그래서인지 얇은 펜선으로 그려낸 무채색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었던 원작에 반해 영화 속 인물들은 제 대사를 마치고 퇴장하는 종이인형처럼 시들거리기만 한다.

'여중생A'가 지극히 현실적인 소녀의 성장담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던 이경섭 감독의 작법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여중생A'의 생명력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