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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드라마

거짓말

by 하얀태양 2017. 8. 26.
넌 안 하니?
나만 이러는 거야?
행복하고 싶은 게 나쁜 거야?

리플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영.
멋지게 차려 입고 부동산에 가서 고급 아파트를 구경하고,
값비싼 물건을 진짜 살 것처럼 생색내며 백화점 쇼핑을 한다.
동료들에게 곧 결혼할 부자 남자친구가 있다고 자랑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영에게 온 가난하지만 순정적인 남자, 태호.
아영이 태호의 청혼을 받고 고민에 빠지면서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회사 동료들, 가족들은 그녀의 허점을 물고 늘어져 벼랑 끝으로 내몰지만,
오직 태호만은 아영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아영은 자신이 만든 허영의 감옥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2015 여성영화인축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감독상 수상 (<거짓말> 연출)

 

 

 

 

 

 

 

 

 

[리뷰] 
평범한 일상을 갖기도 힘겨운 아영은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는 대신 주목받기를 원하며 거짓말을 한다. 영화 초반부에서 아영의 일상은 현실 세계와 거짓말 세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듯 보인다. 아영의 거짓말은 마치 수영을 할 때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힘겨운 세상살이에 대한 그녀의 호흡법 같다. 가질 수 없는 빌라를 살 것 처럼 돌아보며 허세를 부려보기도 하고, 고가의 최신 가전기기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살 것처럼 신청서를 쓰다가 결제할 타이밍에 지갑을 안가져온 양 연기를 한다. 그러나 중고차 매매장 직원인 남자친구를 교사라고 거짓말하고, 현실과 닿아있는 것들에 대해 주변을 속이면서 그녀의 거짓말 세계는 야금야금 현실을 잠식한다. 현실을 견디기 위해 시작한 놀이 같았던 그녀의 거짓말은 그녀의 목을 죄어온다.
아영이 처한 현실과 그녀가 만든 거짓말의 세상은 비단 아영만의 것은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타인의 시선을 끌고싶고, 남들에게 경제적으로 뒤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각종 SNS에는 남들이 가 본 레스토랑에서 남들이 주문하는 요리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남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곳에 먼저 다녀와서 자신을 과시하기도 한다. 어느새 자본의 가치가 사회의 계급이 되고 하위계급으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일상이 아닌 특별한 경험들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마치 일상의 하루하루인양 자신을 삶을 내보인다. 아영은 거짓말과 삶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우리의 한 면모를 극대화하여 안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아영의 허언증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콜라보의 극단적 폐해를 보여준다. 모두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이 있고 그 욕망에 어느 정도는 저당잡힌 채 특별한 어느 하루를 마치 일상인 양 타인에게 보이며 평범한 일상에 대한 기준을 높여간다. 정작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보장은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범한 일상에 대한 기준치만을 높이면서 개개인의 불행지수만 더해져간다. 영화의 말미에서 감독은 거짓말이 현실을 조여오는 아영을 현실이라는 틀로부터 건져올린다. 더이상은 버틸 수 없는 그녀에 대한 구원의 손길 같다.
우리나라에서 여배우 원탑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여배우의 원탑영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역시나'가 된다. 그래서 여배우 원탑영화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거짓말>은 독립영화계의 손예진 "김꽃비"의 원탑영화이다. 김꽃비는 현실 속에서, 또 현실과 거짓말의 경계 위에서 위태로운 아영을 연기하였다. 아영에게서 거짓말의 가치가 변해가는 과정을 눈빛과 표정으로 표현하였다. 김꽃비의 연기는 아영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평범한 듯한 그녀의 일상적인 연기는 나의 현실과 그녀의 거짓말 사이에 매개 역할을 하며 <거짓말>을 더욱더 진정성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해 주었다. 또한 이 작품은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더 큰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다. 

[리뷰 2]

작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을 때, 진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은 도리어 믿지 못할 허구들만 쏟아내고 있었다. 어떤 것을 믿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찰나, MBN에서 민간 잠수부를 현장에서 단독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홍씨의 성을 가진 그녀는 잠수할 당시 세월호의 침몰에 대해 자신이 본 것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이는 생방송으로 전파를 타 많은 시청자들이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후 다른 민간 잠수부들이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그녀의 실체가 드러났고, 홍씨는 허언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말 잠수한 것처럼 세세하게 말했기에 사실이라 여겼지만 모두 허구였던 것. 영화 <거짓말>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사례다. <거짓말>은 '리플리 증후군'을 다뤘기 때문에 허언증과는 같은 개념이 아님에 주의해야하지만 자신의 언행을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사실인 양 믿게끔 한다는 점이 흡사하다.


가난한 아영(김꽃비)이 60평대 아파트를 둘러보고, 대형 TV와 냉장고를 계약하(다 나중에 취소하)고, 외제차 시승을 해보는 건 순전히 자신의 경제적인 처지를 부정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유에 있다. 세상 사람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며, 아영에게 방법은 부유한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이다. 얼마나 뻔뻔하고 당돌한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너그럽게 바라보면 아영의 행동을 무조건 나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어떤 언행을 할 때 적어도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으면 되지 않나. 아영의 거짓말은 주변인에겐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포커스를 맞춘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영의 거짓말은 태호(전신환)라는 남자로부터 점차 위기를 겪게 된다. 아파트를 둘러본다고 계약할 의무는 없으며, 금액 지불 없이 계약한 냉장고는 취소하면 그만이고, 외제차는 시승에서 그치면 된다. 태호의 청혼이 아영을 흔들리게 한 이유는, 태호와 함께 있으면 아영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영의 거짓말은 오롯이 그녀 혼자만 있을 때 가능하고, 완벽하다. 하지만 태호와 함께 지내는 순간 아영의 '참된 행복'은 영원히 소멸되고 만다.


그럼 감독은 <거짓말>을 만든 기획의도가 '거짓말을 하지 말자'였을까? 아니다. 감독 김동명은 관객에게, 현실의 가난한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아영에게 자신을 투영해보라는 시도를 제안한다.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주변만 해도 열에 하나 될까 말까할 정도로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그려온 꿈을 동경한다. 아영처럼 가난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부유하게 살아보고픈 소망이 있을 수도 있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면 전교 1등의 자리에 앉아보는 꿈을 꿀 수도 있으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은 아름다운 호텔에서 고급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 이런 꿈들이 나쁜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아영의 거짓말은 자기의 선에서 시작하고 끝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녀의 거짓말로 피해를 보지 않는다. 아영은 이렇게 하면 자신이 '행복'하기에 그런 짓들을 했을 뿐이다. 비록 영화의 후반부는 아영의 거짓말이 탄로나면서 위기에 놓이지만, 이런 결과보다 아영이 거짓말을 하게 된 원인을 조명하는 것이 <거짓말>의 포인트다. 정작 이 포인트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데, 이건 감독의 고의이자 의도인 셈이다.


결국 <거짓말>은 행복을 동경한 한 여자의 비극이다. 포스터 문구처럼 행복해지고 싶은 게 뭐가 나쁜가. 이건 살아가면서 인간이 가지는 당연한 욕구인데 말이지. 다만 아영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 잘못됐다. 다른 방법도 있는데 아영은 굳이 거짓말을 썼다는 것이 결국 그녀에게 안타까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누리려는 시도도 쉽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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