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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드라마

박열 (Anarchist from Colony, 2017)

by 하얀태양 2017. 7. 5.

20여 년 전 이준익 감독과 ‘박열’의 첫 만남이 있었다. 당시 영화 <아나키스트>(2000)를 제작 중이던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 운동의 역사를 다룬 다양한 서적에 등장하는 수많은 독립투사 가운데 ‘박열’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고등학생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폭압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로 건너가 적극적으로 투쟁했던 청년 ‘박열’에게 운명처럼 매료된 것이다.

서양의 사상과 이념이 난립하던 1920년대, 유럽의 혁명 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아나키즘에 사로잡힌 ‘박열’의 삶에 주목한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나키스트로서 탈 국가적이고, 탈 민족적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의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쁜 일본인’, ‘억울하지만, 선량한 조선인’ 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로 영화를 그려내고 싶지 않았다”라고 연출을 시작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참혹한 역사를 묻으려는 일본 내각을 추궁하고, 적극적으로 항거했던 ‘박열’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이준익 감독은 “영화로나마 ‘박열’의 삶과 가치관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20년을 공들인 끝에 드디어 영화 <박열>이 탄생할 수 있었다”라며 ‘박열’의 영화화에 얽힌 특별한 사연을 밝혔다. 


 영화 <박열>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에 가려진 인물 ‘박열’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까지 3대에 걸친 비극적인 가족사를 재조명했던 정통 사극 <사도>,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청년 시절을 담담하게 그려낸 <동주> 등 다수의 시대극을 연출해 오면서 역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통해 전작들의 틀을 완전히 탈피한 새롭고 강렬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따랐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강렬하게 그려낸 이준익 감독은 열두 번째 작품 <박열>을 통해 그의 한계 없는 연출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6월 극장가에 뜨거운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영화 <박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박열’과 ‘후미코’가 시대를 마주했던 자세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사회관과 국가관, 세계관 등의 사상일 수도 있고, 삶 그 자체일 수도 있었다. “픽션이 가미된 오락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스펙터클하고 버라이어티 한 볼거리가 필요했겠지만, <박열>은 달랐다. 오락성에 치중하여 ‘박열’과 ‘후미코’에 대한 진정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실존 인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미술 역시 실존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 낼 섬세한 디테일이 가장 중요했다. 완벽한 고증을 위해, 1920년대 ‘박열’과 ‘후미코’가 활약했던 시기의 모든 신문의 원본을 찾아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미술팀의 노력으로 영화 <박열>은 더욱 사실적인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시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소품 중 하나는 바로 신문인데, ‘박열’과 ‘후미코’의 사진이 동일하게 분장한 ‘이제훈’, ‘최희서’의 사진으로 바뀐 것만 제외하고 작은 기사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재현해 낸 신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당시 ‘박열’의 활약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신문 못지않게 중요한 자료는 ‘후미코’의 자서전이었다. <박열>의 모든 제작진은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고, 또 읽었으며 한 문장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박열’과 ‘후미코’의 집이자 ‘불령사’의 아지트가 신발가게 2층으로 설정되었던 것과, 창문 밖에 써 붙인 붉은 하트 무늬 위 ‘반역’이라는 글씨는 모두 ‘후미코’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내용 그대로를 재현한 것이다. 또한 제작진은 ‘박열’과 ‘후미코’가 처음 동거를 시작하는 장면에서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 한 권 한 권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아나키스트로 활약했던 ‘박열’이 영향을 받았을 법한 그 시대의 사상 서적들을 100여권 정도 직접 제작한 것이다. 당시 책들의 대다수는 국내에서는 이미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제작진은 일본의 국회 도서관이나 중고 서적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는 노력을 기울여 실제 책 이미지를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이재성 미술 감독은 “시대적 고증을 과한 스케일로 보여주는 것보다 디테일하고 작은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박열>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시대의 정서가 느껴지는 밀도 있는 미술을 통해 관객들은 ‘박열’과 ‘후미코’라는 인물이 살아온 인생과 성장 배경 등을 큰 설명 없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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